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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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애구애구 댓글 0건 조회 1,006회 작성일 03-09-24 06:00본문
모두 안녕하시죠? 설 연휴때 수술받았던 이석성입니다. 이제는 완전히 나아서 너무 편하고 좋은 것 있죠.....ㅎㅎ.. 지금 이순간에도 친절과 정성으로 애쓰시는 항사랑의 모든 분들께 작은 글 하나 올립니다. 그 날 이 석 성 7월을 마감하는 장마비가 거리를 씻어내고 있다. 보도위로 튕겨져 나가는 빗줄기에 실려 여름이 고개를 넘어간다. 언제나 이맘때쯤이면 생각나는 순간들이 있다. '군대, 이제는 제대한지 상당히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33개월간의 군대생활은 이따금씩 시간의 한모퉁이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어떤 때는 꿈속에서, 또 어떤 때는 무심한 순간들 속에서 ....... 7월을 맞은 논산의 뜨거운 땡볕, 끔찍한 훈련과, 훈련을 마친 뒤의 자대생활, 삼척을 거쳐 하조대로, 그리고 군대생활의 끝을 맞게 되는 고성에서의 시간들, 그런 생활들 속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고성에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가 제대를 약 10개월 정도 남겨놓았을 때 그는 우리 중대에 수색소대장으로 왔다. 육사출신의 육군중위였다. 작고 깡마르고 갸날픈 몸집이었지만, 눈빛은 언제나 햇빛에 반사되는 물결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름은 이석중. 나와 이름이 매우 비숫했다. 뒤에 알았지만 그의 동생이름이 내 이름과 같았고 나이도 같았다. 그는 언제나 원칙을 존중했고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군인이었고 군인이 되고자 애쓰고 있었다. 때때로 저녁의 점호가 끝나고 취침시간 무렵에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인생관등을 우리들의 머리맡위에서 들려주곤 했었다. 어느날 이던가 역시 점호를 끝내고 취침을 위해 소대원들이 누워 있을 때 그가 들어왔다. 내무반의 한가운데에서 열중쉬어의 자세로 그는 이야기를 했다. 꽤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이지만, 그러나 아직도 그때의 이야기는 먼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 여기서의 생활은 모두가 꺼려하고 원치 않는 것이다. 깊숙한 산골의 군대생활, 젊음의 낭만이나 즐 거움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곳, 이런 생활은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두가 피하지만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 그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을 왜 그가 하고 있는가 "의 해답을 우리에게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말을 맺었다. 그 당시에 우리가 주둔하고 있었던 강원도 고성은 매우 깊숙한 산골이었다. 주변의 민가 몇 채 외에는 거의 민간인이 없었다. 근처의 읍으로 나갈려면 1시간정도를 차를 타고 나가야 조그만 간성읍을 구경할 수 있었다. 며칠가다 한번씩 잔밥을 실어가기 위해 부대내로 마차를 몰고 오는 사람을 보는 것이 민간인을 볼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며칠, 몇 달의 시간들이 변화가 없는 생활.......... 우리 사병들은 몇 개월이나 또는 2∼3년이면, 이 생활을 청산할 수 있다는 희망감에서 시간을 죽여 보낼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에게서 이곳의 생활은 직업이었다. 몇 달이나 몇 년이 아니고 어쩌면 그는 자신의 젊음을 완전히 이곳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 ※ 그날 이후로 몇 달이 지나서 나는 33개월의 군대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되었다. 다시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리고는 아주 많은 세월들이 지나갔다. 그러나 지금도 이따금씩 늦은 저녁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 옛날처럼 취침나팔소리가 조용히 스며 들어와서 마음을 가라 앉혀 주는 것 같다. 마치 진혼곡처럼..................... 간간히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내무반 중앙에서 열중쉬어의 자세로 이야기에 열중하던 그의 모습, 번쩍거리는 눈빛이 보여진다. 이렇게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도 '모두가 피하지만 그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하고 있을까? 캄캄한 밤 하늘 아래에서 전방의 산허리를 휘감아 돌아 나오는 겨울바람의 휘파람 소리가 지금도 귓가를 서늘하게 스쳐 가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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